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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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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북한의 남침(1950. 6. 25 ~ 9.)

 

소련과 비밀리에 군사 협정을 맺어 군사력을 키운 북한은 무력으로 한반도를 통일시키기 위해 

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준비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 선을 넘어 남한으로 쳐들어왔다. 전쟁이 시작되자 북한군은 우세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삼 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습니다. 

 

 

북한이 쳐들어오기 전 남한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하였고, 전쟁에 대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북한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온 북한군에게 남한은 낙동강 이남 지역만 남기고 모두 빼앗겼습니다. 낙동강 전선으로 후퇴한 우리 정부는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였습니다.

 

[2단계] 국군과 국제 연합군의 반격(1950. 9. ~ 11.)

 

* 유엔군 파견 -> 인천 상륙 작전(1950. 9. 15) -> 서울 수복(1950. 9. 28) -> 북으로 진격

 

국제 연합에서는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여 여러 나라로 구성해 국제 연합군을 파병하여 남한을 돕습니다. 국군과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국제 연합군은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어 전쟁 시작 90일 만에 서울을 되찾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인천은 서울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짧은 거리에 있는 항구였고, 수도 서울을 되찾음으로써 북한에게 심리적인 타격,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3단계] 중국군의 참전(1950. 10.)과 1. 4 후퇴(1951)

 

* 압록강까지 진격 -> 중국군 개입 -> 철수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엇지만, 중국은 북한의 요청 등을 이유로 30여만 명의 군대를 파병하여 전쟁에 개입하였습니다. 다시 전세가 역전되어 북한군은 38선을 남하하여 1951년 1월 4일에 수도 서울이 북한군에 다시 점령되었습니다. 한국 정부와 민간인은 다시 피란길에 올랐고, 국군과 국제 연합군은 남쪽으로 철수하였습니다. 

 

[4단계] 휴전 협정(1953. 7. 27)과 휴전선

 

전력을 가다듬은 국군과 연합군은 서울을 되찾고 38선 부근까지 진출하였습니다.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이다 휴전 협상을 시작하였고 지금의 휴전선을 정하여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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